
강서구의 가장 높은 봉우리, 개화산에 오르면 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산들은 동네를 품에 안아 눈부신 풍경을 펼쳐 보인다.
겸재 정선이 붓을 들게 했던 그 장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숨결을 간직한 채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앞에 선다.
이번 <동네 한 바퀴> 317번째 여정에서는 강서구 화곡동과 방화동의 골목을 누비며 삶의 무게를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찬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 개화산 약사사
서울 강서구 금낭화로17길 261
02-2662-2551
올해의 봄을 당신에게 선물하겠습니다


봄이 오면 김지윤 씨는 거리 곳곳을 누비며 피어난 꽃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세밀히 관찰하고 직접 스케치를 하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을 과자 속에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공방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색색의 찹쌀 반죽을 다듬고, 틀로 찍어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잎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탄생한 화과자는 마치 작은 꽃밭처럼, 먹기 아까울 만큼 정교하다.
하지만 이 화과자는 단순한 봄의 상징만이 아니다. 여름이면 싱그러운 과일을,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을,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형상화하는 등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
화과자의 매력에 사로잡힌 지윤 씨는 결국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단 한 달 배운 솜씨로 과감히 공방을 열었다. 그녀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 때문이었다.
횟집을 운영하며 36년을 보낸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거닐며, 계절의 색을 접시에 담았던 기억. 봄꽃이든, 가을 단풍이든, 자연이 품은 아름다움을 전하는 기쁨을 배운 것이다.
▶ 화윤공방
서울 강서구 곰달래로54길 37 2층 화윤공방
0507-1420-8605
초가집 아래 짚공예 할아버지 삼총사


방화근린공원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흐드러진 벚꽃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이곳에서 꽃구경을 즐기다 보면 특이한 초가집 하나가 눈에 띄는데, 그 주인은 바로 짚공예에 정성을 쏟는 할아버지 삼총사다.
도심 한복판에서 볏짚이라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강서구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쌀농사가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볏짚과 함께 자라온 할아버지들은 어린 시절 손에 익은 기술을 잊지 못해, 20년 전부터 직접 지은 초가집에서 매일 새끼줄을 꼬아 왔다.
그들의 손끝에서 엮여 가는 새끼줄은 단순한 공예가 아니다. 한 가닥 한 가닥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고, 사라져 가는 전통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동네 주민들도 가끔 찾아와 한 번씩 새끼줄을 꼬아 보며,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본다.
▶ 방화근린공원
서울 강서구 금낭화로 176 방화근린공원관리사무소
02-2657-8688
추억의 그 맛! 장작구이 통닭


화곡본동시장 근처 골목을 걸으면, 구수한 냄새가 길을 안내하듯 퍼진다. 장작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통닭구이, 이곳의 오랜 명물이다.
사장 정병수 씨는 이 골목에서 30년을 보냈다. 어린 시절 단골손님들이 어른이 되어 가족을 데려오고, 또다시 추억을 쌓아가는 곳.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손님들과의 신뢰를 지키려면 그만큼의 희생도 필요했다.
쉬지 않고 일했던 탓에 병수 씨는 건강을 잃었고, 한쪽 청력을 잃은 데 이어 나머지 한쪽마저 약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게 문을 열고, 익숙한 장작불을 피운다.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고자 딸 정혜인 씨가 가게에 나서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깊어졌다.
때론 의견이 부딪혀 다투기도 하지만, 혜인 씨는 아버지의 손과 귀가 되어 함께 가게를 지킨다. 부녀의 애틋한 사랑이 배어 있는 이곳, 덕분에 화곡동 장작구이 통닭집의 불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 헤라클래스
서울 강서구 화곡로 194-48
02-2695-0667
행복한 순간을 담아드려요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화곡동에는 이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윤희숙 씨의 말린 꽃 공방이다.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은 꽃, 시간이 지나 시들어 가지만 희숙 씨의 손을 거치면 마법처럼 다시 태어난다.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3개월간 건조 과정을 거친 꽃들은 처음 받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꽃들은 단순한 기억의 조각을 넘어 액자, 향초, 보석함 같은 특별한 작품으로 변신한다. 시들며 희미해졌던 감정과 추억이 작품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이다.
희숙 씨를 찾아오는 모든 꽃다발은 저마다의 행복한 순간을 품고 있다. 남편이 처음 건넸던 꽃 한 송이, 두근거리는 프로포즈의 흔적, 결혼식에서 손을 맞잡았던 순간, 부모님의 오랜 인생을 기념하는 은퇴 선물까지.
▶ 보나비 플라워 부케말리기 선물 공방
서울 강서구 곰달래로 169 4층
0507-1328-1220
60년 전통 중국집의 동파육


김포국제공항이 문을 연 지 67년, 그 역사를 함께해 온 방화동의 맛집이 있다. 공항 직원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 바로 진가기 씨가 운영하는 중국집이다.
이곳이 허허벌판 속에서 명소로 자리 잡은 건 단 하나의 요리 덕분이었다. 가기 씨의 아버지가 물려준 동파육. 그에게는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가문의 자부심이었다.
아버지는 생전 가기 씨에게 당부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메뉴에서 동파육을 빼지 말라고. 그만큼 특별한 의미가 담긴 요리였다.
과연 이 동파육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고기 한 점에 스며든 세월의 깊이, 전통을 지켜 온 손맛이 오늘도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 도일처
서울 강서구 개화동로 567
002-2662-2322
그 집 김이 유독 고소한 이유


남부골목시장의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 입소문이 자자한 기름집이 있다. 고소한 풍미로 사랑받지만,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MZ세대 사장, 신수빈 씨다.
낡은 기름집을 지키는 30살 사장을 처음 본 손님들은 반신반의하지만, 기름 짜는 기계며 고추 빻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의 모습에 금세 신뢰를 얻게 된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몸에서 기름 냄새가 배어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낸 지도 어느덧 3년째.
그가 기름집을 시작한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 박세영 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쳤지만, 세영 씨는 자식들을 위해 요양조차 포기하고 김 가게를 열어 쉼 없이 일해왔다.
그런 어머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수빈 씨.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김을 만들고자 직접 기름집을 차렸다. 어머니의 김에 딸이 직접 짜낸 기름이 더해지면서, 그 맛은 더욱 깊어졌다.
▶ 주부상회
서울 중구 다산로10길 6 1층 골목길
0507-1306-2969
▶ 해림맛김
서울 강서구 등촌로5길 52 1층 4호 남부시장안
0507-1361-8943